쓸쓸한 날에
강윤후
가끔씩 그대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대 떠난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서 부지런히
세상의 식량을 축내도 더없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뻔뻔하게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꾸미고 어쩌다 술에 취하면
당당하게 허풍떠는 그 허풍만큼
시시껄렁한 내 나날들 가끔씩
그래, 아주 가끔씩은 그대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
여전히 의심이 많아서 안녕하고
잠들어야 겨우 솔직해지는 치사함 바보같이
넝마같이 구질구질한 내 기다림
그대에게 알려 그대의 행복을 치장하고 싶다
철새만 약속을 지키는 어수선한 세월 조금도
슬프지 않게 살면서 한 치의 미안함 없이
아무 여자에게나 헛된 다짐을 늘어놓지만
힘주어 쓴 글씨가 연필심을 부러뜨리듯 아직도
아편쟁이처럼 그대 기억 모으다 나는 불쑥 헛발을 디디고 부질없이
바람에 기대어 귀를 연다. 어쩌면 그대
보이지 않는 어디 먼데서 가끔씩 내게
안부를 打電(타전)하는 것 같기에
*시집 <다시 쓸쓸한 날에> 문지. 1995
바람이 부는 날이면 누군가 나를 떠올려줄 지도 모른다고 믿어지는 세상은 그래도 살만 하다.
곁에 아무도 없어도, 그래서 쓸쓸한 날들이 기약없이 이어진다고 해도
누군가로 인해 나는 거기,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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