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꽃 팬티
정일근
어머니 병원 생활하면서
어머니 빨래 내 손으로 하면서
칠순 어머니의 팬티
분홍 꽃 팬티라는 걸 알았다
어머니의 꽃피던 이팔청춘
아버지와 나눈 사랑의 은밀한 추억
내가 처음 시작된 그곳
분홍 꽃 팬티에 감추고 사는
어머니, 여자라는 사실 알았다
어느 호래자식이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라고 말했나
성(性)을 초월하는 거룩한 존재라고
사탕발림을 했나
칠순을 넘겨도
팔순을 넘겨도
감추고 싶은 곳이 있다면
세상 모든 어머니는 여자다
분홍 꽃 팬티를 입고 사는
내 어머니의 여자는
여전히 핑크 빛 무드
그 여자 손빨래하면서
내 얼굴 같은 색깔로
분홍 꽃물 드는데
*시집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가장 내밀한 곳에 어머니들은 꽃무늬를 입는다.
겉은 칙칙하고 어두운 옷으로 치장해도 그중 팬티는 화려하다.
일기장에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히 써내려가듯
어머니들은 팬티에 자신이 여자임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식이 보는 것은 언제나 어머니의 겉모습일 뿐,
어머니의 그 팬티속에 감춰진 여자라는 사실을 왜 보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왜 그때 보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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