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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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를 키우고부터는 해의 방향에 민감해졌다.
물론 그것은 우리집 베란다를 기준으로해서 해가 언제부터 얼마나 오래 들어오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얼마전 영하 15도를 밑도는 매서운 추위가 몰아쳤는데 정말 신기한 것은 베란다로 해가 12시경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오후 2시가 조금 지나서야 서서히 베란다 한쪽부터 햇살이 들어왔는데 말이다.
그래서 한 낮에는 베란다에 햇살이 가득하여 오히려 춥다는 느낌이 덜 했다.
초록빛도 점점 살아나면서 촉들도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계절은 이렇게 어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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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개인적인 공간이고 내게 닥친 어떤 어려운 일에 자기방어내지는 변론을 나 스스로 허용하면서
위로를 받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결과보다는 과정들이 더 많이 담겨 있는 곳이다.
하지만 요즘은 무언가를 이곳에 쓴다는 것에 회의가 들 때가 있다.
난 순간의 감정이나 생각을 배설하듯 편하게 이곳에다 끄적이고 있지만 그걸 보는 타인의 눈에는
나의 삶의 방식에 있어 회피나 타협, 또는 이유를 만들어내는 변명쯤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게 뽑아낼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 한계가 있다.
작가든, 예능인이든, 배우든, 화가든 그리고 어떠한 직업이 되었건...
때문에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고나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매너리즘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에게도 어떤 선입견이 이미 박히게 되어 쉽게 파괴되지 않는 면이 있다.
그래서 위대한 성인이라 해도 가까운 가족에게 인정받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이따금 책에서 접하게 되는 작가나 사상가들의 좋은 말들에 깊이 감동하며 가슴에 새기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우리가 명언이라 여기는 그런 말들을 잔소리쯤, 아니면 '또 그 소리야'라는 반응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를일이다.
사람이 신선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신선미가 사라지면 숙성이라든가 관록, 성숙미라는 말로 대체를 하고는 한다.
하지만 신선하다는 것만큼 좋은 말이 또 있을까?
그것은 놀라움, 궁금증을 자아냄, 호감과 관심을 끌어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 뭔가를 올리는 일들이 저어되는 이유도 어쩌면
나도 식상한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뻔하게 읽히는 것, 뻔하게 보이는 것처럼 사족은 없을 것이다.
숙성의 시간에는 밀폐라는 과정이 반드시 거치게 되듯이 나도 나의 말이나 감정을 밀폐시켜야 하는 것은 아닌지...
요즘 나의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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