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처음 풍로초가 피었다.
요 며칠은 베란다를 정리했다.
화분으로 꽉 차 있는 곳을 정리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수도 없이 화분을 들었다 놨다 해야 하는 일이므로 손가락이나 팔꿈치 관절에 무리가 오기도 한다.
그래도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힘이 드는 줄을 모르는 법이라 저녁이면 파스로 맛사지를 하고 적외선으로
찜질을 해야하지만 다시 아침이면 맨 먼저 베란다 꽃들에게 안녕을 묻는 것으로 시작하곤 한다.
그러면서 엄마가 생각나는 횟수도 점점 많아진다.
참 많이도 보고 싶은 엄마....
엄마가 생전에 왜 그토록 화초들을 가꾸었는지 이제 난 그 마음을 알 것만 같다.
엄마는 우리집에서 며칠을 지낼 때에도 늘 화초들을 걱정 하곤 하시었다.
지금쯤 선인장 꽃이 피었을 텐데 혼자 피겠다는 둥, 날이 추워지는데 화분들을 들여놓으러 가야겠다는 둥,
누구에게 준 화분이 잘 크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둥....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자신의 화초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것에 대해 많이 가슴아파하셨다.
자기가 없으면 버려질 화분들...
그때 난 엄마에게 어땠던가.
난 엄마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아픈 사람이 쓸데없는 걱정이나 한다고 타박이나 하지 않았던가.
나에겐 하찮았던 일이었지만 엄마에겐 그렇지 않음을,
아니, 죽음을 바라보면서 엄마의 마음에 가장 걸리는 것이 평생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자식도 아닌 바로 화초였다는 것이,
화초일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사실을 그때 난 헤아리지를 못했다.
엄마는 모든 걸 놓아버리고 난 후 마지막으로 자신의 마음을 화초에 기대며 살았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시간동안 엄마가 겪었을 외로움이 어떤 것이었을지를...
꽃들을 키우면서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주고 싶어하고 또 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원하는 것, 또 기대하는 것은 늘 어느 만큼의 시간에서 끝이 나고 만다.
그리고 끝은 언제나 마음을 거두고 쓸쓸하게 돌아서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사랑을 사람이 아닌 다른 뭔가에 쏟아 붓게 되나보다.
상처받지 않고 마음을 애써 거두어들이지 않아도 되는 대상을 찾아서...
가끔씩 가드닝을 취미로 하는 블로그들을 찾게 되는데 신기한 것은 그들의 자기 고백의 대부분에는
우울증이라든지 외로움이라든지 하는 감정들을 화초를 키우면서 극복했다는 내용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를 돌아본다.
나 역시 화초를 키우는 동안 나도 모르게 긴 터널을 지나온 기분이 든다.
나도 이제는 감정적으로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제는 삶이 주는 원초적인 외로움을 타인에게 징징거리지 않고 나 스스로 홀로 껴안으며 살아갈 수도 있겠구나 싶다.
점점 나도 엄마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는 나를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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