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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의 친구의 전화

kiku929 2012. 5. 21. 14:32

 

 

 

 

아침 핸드폰의 벨이 울리더니 모르는 전화번호가 뜬다.

혹시나 택배아저씨일지 몰라 통화를 눌렀더니 수화기 저 끝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애였다.

연락이 끊긴지 3년이란 긴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나 그동안 많이 아팠어. 류마치스에다 대상포진으로 입원도 하구.. 희귀병이라고 하네."

 

정애랑은 초등학교때부터 중학교를 같이 다닌 적 있는 꽤나 가까운 친구였었다.

그 언니는 우리 언니와 또 친구여서 자매가 서로의 집에 놀러다니기도 했던, 나엔겐 어린 시절 추억과

더불어 마음에 남아 있는 친구이다.

"남편이 아주버니 보증섰는데 잘못되는 바람에 그동안 고생하다 작년까지 빚 다 갚았어.

큰애는 원주에 있는 연세대 의대에 들어가서 지금은 방사선과에 있고,

둘째 셋째도 일 이등 해. 남편도 이제 교장이 되었구. 그런데 나만 이렇게 매일 아파.

나의 삼십대 사십대를 통째로 잃어버린 것만 같아서 그게 너무 억울해.

우울증도 오고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60키로정도였던 몸무게가 지금은 80키로도 넘어.

창피해서 밖에도 못나가고 몸이 아프니 집안일도 못하겠고..."

 

그동안 말할 친구가 없었던 것이었을까? 간간이 내가 묻는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자기 얘기만 한다.

나도 묻는 것을 포기하고 묵묵히 들어줬다.

그리고 자기를 챙겨줄 사람은 자기밖에 없으니 힘들어도 네 건강에만 신경쓰라는 말만 해줬다.

말을 하면서도  그런 말밖에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나는 지금 건강하고, 지금 그 친구는 아프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 친구에게 나의 말은 아무런 위안이 되어주지 못할 것이다.

물론 함께 꼭 아파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을 난 안다.

 

모처럼의 통화인데 많이 아프다니 내 마음도 안 좋았다.

 '나 많이 아파'라는 한 마디로 끝나버리는  것이지만 그 아프다는 말 뒤로 본인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아주 세밀하게 분해되고 분해되는 언어들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아프면서도 내 생각이 많이 났단다.

학창시절 가끔씩 엉뚱한 말로 수업시간에 친구들을 곧잘 웃기곤 했던 정애.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착한 심성으로 밝기만 했던 친구...

아침 그 친구의 전화를 받고나서 내내 내 마음이 어둡다.

자주 전화해서 입원이라도 한 것을 알게 되면 하루쯤 곁에서 시중들어주고 싶다.

부디, 부디 아프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