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5년 예수회에 페레이라 그리스트반 신부가 고문으로 배교(背敎)를 맹세했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그 신부는 일본에 33년동안 체류하면서 온갖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신앙심이 누구보다 깊은 사람이었기에 그 보고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이 책의 주인공인 로드리고 신부가 일본의 선교사로 자청하여 떠나게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처음은 일인칭 소설로 로드리고가 일본에 도착하여 잡히기까지 편지글 형식으로
쓰여졌다가 나중엔 3인칭화하여 로드리고라는 신부로서의 인간적 고뇌를 담담히
바라보며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종교의 기능은 무엇인가?
참된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본에 도착한 이후 로드리고는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를 부인하면서
자신은 끝까지 신앙인으로서 믿음을 지키겠노라고 다짐하지만
결국 그는 '배교자 바오로'라는 오명을 안게 된다.
부교오 이노우에는 신부가 배교하지 않으면 신도들을 구멍매달기라는 고문으로
서서히 죽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부가 신도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신도들이 자기로 인해 죽게 되는
상황이었던 것.
여기서부터 신부의 고뇌가 시작된다.
성화를 밟고 신도들을 구해낼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의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끝까지 성스러운 순교를 할 것인가...
여기서 신부는 침묵하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밟는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느니라'
신부는 지금까지 생의 전부였던 꿈과 이상과 믿음을 버리면서
성화를 밟게 된다.
신부는 스스로 생각한다.
성직자들은 이 모독의 행위를 격렬하게 질책하겠지만 자신은 그분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지금까지와 다른 형태로 그분을 사랑하며
그 사랑을 알기 위해 오늘까지의 시련이 필요했던 거라고...
그러면서 자신은 여전히 일본 최후의 카톨릭 신부이며 그분과 함께 하며
그분의 말씀과 행위를 따르겠노라고 생각한다.
종교란 인간에게 믿음인 것이다.
그 믿음은 외형적인 어떤 형태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의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로드리고 신부는 성직자로서는 씻을 수없는 굴욕적인 오점을
행했지만 스스로는 여전히 하느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기에 나약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신과 인간이 어찌 구별될까.
신은 그런 인간을 이해하고 용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런지...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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