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난 뒤의 팬티
오규원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 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者)도 아닌 죽은 자(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 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병원에서 왜 이 시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병원에 있으면 인간으로서의 치레들이
한순간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걸 느낀다.
그럴때마다 난 수치심도 느끼면서
내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무력감을 맛본다.
가끔 난 죽고 난 뒤의 내 모습에 대해 생각한다.
어떻게 죽어야 살아있는 사람에게 내 마지막 모습이
그나마 아름다울 수 있을지,
혹여 아이들에게 엄마가 무섭지는 않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응급실에 실려갈 때 나 역시 나의 속옷을 돌아보고
머리는 감았는지, 샤워를 했는지, 손 발톱은 잘랐는지,
내 물건들은 정리가 되었는지,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이란 한계!!
"인간은 동물로 태어나
사람이 되길 꿈꾸다가
돌물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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