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죽고 난 뒤의 팬티 / 오규원

kiku929 2010. 1. 11. 13:55

 

                                                

 

 

             죽고 난 뒤의 팬티

 

                                        오규원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 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者)도 아닌 죽은 자(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 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병원에서 왜 이 시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병원에 있으면 인간으로서의 치레들이

한순간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걸 느낀다.

그럴때마다 난 수치심도 느끼면서

내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무력감을 맛본다.

 

가끔 난 죽고 난 뒤의 내 모습에 대해 생각한다.

어떻게 죽어야 살아있는 사람에게 내 마지막 모습이

그나마 아름다울 수 있을지,

혹여 아이들에게 엄마가 무섭지는 않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응급실에 실려갈 때 나 역시 나의 속옷을 돌아보고

머리는 감았는지, 샤워를 했는지, 손 발톱은 잘랐는지,

내 물건들은 정리가 되었는지,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이란 한계!!

 

"인간은 동물로 태어나

사람이 되길 꿈꾸다가

돌물로 죽는다..."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아침 / 안도현  (0) 2010.01.11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 윤성택  (0) 2010.01.11
그녀에게 / 박정대  (0) 2010.01.11
별이 지는 날 / 백남준  (0) 2010.01.11
수화(手話)/ 위선환  (0) 2010.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