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푸성귀를 데치거나 국수를 삶고 난 더운 물을 시궁창에 버릴 때도
반드시 큰 소리로 더운물 내려간다, 소리치고 나서 잠시 머뭇거린 후에 버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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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갈 시간을 주고 더운물을 버리는 행위를 통해서도
사람이 사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도리가 담겨 있었다.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세상에 예쁜 것>중에서 / 박완서, 마음산책
정일근 시인의 <사과야 미안하다>시를 읽다가 이 글귀가 생각나서 옮겨보았다.
"더운물 내려간다" 소리치고나서 버리는 할머니의 마음이나 착한 농부의 마음이나 모두 같은 게 아닐까?
우주 만물과 인간은 하나이며 소통한다는 믿음을 가진 옛 어른들의 생각에 겸허해진다.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자연이 사람의 손에 쉽게 파괴되는 안타까운 일은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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