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매우 강력하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는, 과거는 매우 약하다.
과거에 묻히고 과거로 전락한 적은 현재 우리 앞에 우뚝 선 살아 있는 한 사람보다
덜 무서운 대상이다. 누가 무어라 하든, 지나간 고통은 그것이 닥쳤던 순간의 고통보다는
덜 아프게 느껴진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지나간 행복과 현재나 혹은 다가올 행복과는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의미를 변형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대한 영혼들에게 있어서
몹시 소중한 훈련이다. 후회, 양심의 가책, 뉘우침, 은혜, 사랑, 의지, 용서, 등은 완벽하게
과거를 변형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것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그렇게 해야 한다.
즉, 그것들이 사건 자체를 지우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들에게는 단지 과거를
변모시키는 것만이 허용된다.
과거는 영원한 빙해의 얼음 속에 갇혀 있다.
지난 것은 지난 것이다.- 그러나 또한 매순간 이전의 사건들에 보태어지고, 이전의 것들에게
어쩌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이전의 사건들을 파괴하지 않는, 새로운 사건들로
살찌워 가는 거대한 역사책 속에 과거는 영원히 아로새겨진다.
과거는 점점 살이 붙어, 덩치가 커지고, 매순간 자신의 미래의 몫을 게걸스럽게 삼켜 나간다.
미래는 매순간 조금씩조금씩 자신의 실체와 전체성을 잃어간다.
과거는 매순간 죽은 시간을 야금야금 곳간에 거둬들이다.
과거는 조금씩 조금씩 미래를 굴복시킨다. 과거가 미래의 전부를 정복할 때,
그리하여 과거가 미래에게 더는 펼쳐질 최소한의 여지도 남겨 놓지 않을 때,
그곳에는 이미 죽음이 당도해 있다.
*<거의 모든 것에 관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중에서/ 장 도르메송 , 유정희 옮김(문학세계사)
"이미 지난 일이야"
이 말 속에는 '그래서 지금와서 어떡하라구' 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과거는 그래서 체념이나 포기를 해야하는 대상이되기 쉽지만 사실 과거만큼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하기에 따라 과거는 가장 나약한 존재일 수도, 강한 존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비리는 과거를 두려워하지 않는 데에 있다.
하지만 과거는 현재 내가 수확하고 있는 씨앗인 셈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
그것은 바로 과거로부터 이어진 길이라는 것을...
그래서 역사가 있는 것이고,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0) | 2013.04.09 |
---|---|
보시란... (0) | 2013.03.28 |
삶의 리추얼... (0) | 2013.03.06 |
보행자 건축, 자동차 건축... (0) | 2013.03.05 |
오로지 모호함 속에서만 찬란한 그런곳으로... (0) | 2013.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