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것들의 아름다움...
초승달
나희덕
오스트리아 마을에서
그곳 시인들과 저녁을 먹고
보리수 곁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어떤 손이 내 어깨를 감싸쥐었다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그가 몸을 돌려준 방향으로 하늘을 보니
산맥 위에 초승달이 떠 있었다
달 저편에 내가 두고 온 세계가 환히 보였다
그 후로 초승달을 볼 때마다
어깨에 가만히 와 얹히는 손 있다
저 맑고 여윈 빛을 보라고
달 저편에서 말을 건네는 손
다시 잡을 수 없음으로 아직 따스한 손
굽은 손등 말고는 제 몸을 보여주지 않는 초승달처럼
달 저편에도 환한 세계가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그러나 환한 달 너머에도 빛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두고 온 세계, 갈 수 없는 세계,
그러나 늘 존재하는 세계...
초승달을 보면 그러한 가려진 빛들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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