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초승달 / 나희덕

kiku929 2013. 6. 27. 07:46

 

 

                                                                   아련한 것들의 아름다움...

 

 

 

 

 

초승달

 

 

나희덕

 

 

 

오스트리아 마을에서

그곳 시인들과 저녁을 먹고

보리수 곁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어떤 손이 내 어깨를 감싸쥐었다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그가 몸을 돌려준 방향으로 하늘을 보니

산맥 위에 초승달이 떠 있었다

달 저편에 내가 두고 온 세계가 환히 보였다

 

그 후로 초승달을 볼 때마다

어깨에 가만히 와 얹히는 손 있다

 

저 맑고 여윈 빛을 보라고

달 저편에서 말을 건네는 손

다시 잡을 수 없음으로 아직 따스한 손

 

굽은 손등 말고는 제 몸을 보여주지 않는 초승달처럼

 

 

 

 

 

 

 

 

달 저편에도 환한 세계가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그러나 환한 달 너머에도 빛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두고 온 세계, 갈 수 없는 세계,

그러나 늘 존재하는 세계...

 

초승달을 보면 그러한  가려진 빛들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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