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이 강릉에서 보내온...
벨기에의 흰 달
황 학주
정거장마다
지붕 위에서 사라지는
달이 기다리고
어딜 가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은
달에 가 있다
달이 물방울처럼 아름다운
브뤼셀은 가까워 오는가
정말 生에 가까운 것이 오려나
당신은 참 좋은 사람예요
갑자기 열차 창 쪽에서
선이 바스러진 달이
말한다
죄를 사용했던 사랑만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다시 태어나면
여자에게 그렇게 잘해주는
남자가 되고 싶어요
이번에는 달이
지붕 밑에 온기를 쭈그리고
눈을 붙인다
화려한 땅을 묻어버리고
자기가 자기를 향해 떴던
달은 뒤통수처럼 고요하다
브뤼셀을 한 정거장
지나쳐버린 늦은 밤
우리에게 뜻밖에 되돌아 곳이 생겼다
달이 물방울처럼 아름다운 브뤼셀. 갑자기 북유럽의 하늘 아래 있고 싶어진다. 정거장과 열차, 그리고 정거장 지붕 위의 달. 사랑하는 사람이 달을 보는 것은 서로를 똑바로 응시하기 힘겨운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브뤼셀에는 현실이 있다. '죄를 사용했던 사랑'은 세상이 금지하는 사랑이리라. 그래서 여자는 떠나지만 사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예요." 지금의 세상에선 그럴 수 없지만, 그와 헤어지기 힘겨운데 마침 한 정거장을 더 지나쳤다. 돌아갈 곳이 있어서 행복한 달빛 아래 벨기에. 작은 핑계에 기대어 이별을 한 정거장 뒤로 미룬 남녀의, 쓸쓸히 닿은 어깨 위로 든 흰 달.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아시아 경제, 2012년 9월 25일자 지면에서)
이 시를 읽고나면 자꾸만 입에서 맴도는 말,
"당신은 참 좋은 사람예요"
헤어지는 순간,
혹은 사랑을 회상하면서,
가만히 입속으로 저 말을 되뇌이면
톡! 투명한 물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은 말.
정말 아름다운 시간을 지나온 것처럼
미움하나 남지 않은 말이다.
설령 다시 돌아갈 곳이 영영 사라졌다 해도
저 한 마디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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