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의 집
배문성
저녁까지 집 앞을 지나간 것은
자전거 한 대,
개 두 마리였다.
그리고 잠시 싸래기 눈이 왔다.
노을이 지는지
언덕에 나무 세 그루가 차례로 나타났다.
흰 측백나무,
흰 측백나무,
느티나무.
그리곤 저녁이 된 것이다.
전화가 왔다.
벨소리는 노을 속에서 흘러나온다.
한 번,
두 번...다섯 번,
노을 속으로
전화하는 것이 이렇게 멀다.
까마득하게 들리는 내 목소리에도 노을빛이 담겨 있다.
붉은 외등이 켜지는 동안 목소리가 사라진다.
꾸부정하게 서 있는 그림자를 핥으며
바람이 지나간다.
겨울이 다 가고서야 나는 왜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나는 왜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을까.
사실 나는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몰두해있었다.
내가 너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는 내가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을 속에 집을 짓고 살았던 사람들,
두 볼엔 불그스레 사과빛이 물들어 더욱 어여뻤던 사람들...
노을빛이 흐르는 물로 쌀을 씻고 저녁을 안치던 시간들은
이제 어둠속에 사라졌네.
집도 사라지고
사람들도 사라지고, 노을이 지는동안
사라지는 줄도 모르고 아주 서서이...
누가 누구를 버리는 일은 없었으므로
기다리지 않았으면 버림받을 일도 없었을 것을
기다림으로 해서 잊혀졌다는 것을 한참후에야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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