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천양희
원고료도 주지 않는 잡지에 시를 주면서
정신이 밥 먹여주는 세상을 꿈꾸면서
아직도 빛나는 건 별과 시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제 숟가락으로 제 생을 파먹으면서
발 빠른 세상에서 게으름과 느림을 찬양하면서
냉정한 시에게 순정을 바치면서 운명을 걸면서
아무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면서
새소리를 듣다가도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 *고 책상을 치면서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시적인 삶에 대해 쓰고 있는 동안
어느 시인처럼 나도 무지하게 땀이 났다
* 연암 박지원의 글 「답경지(答京之)」에서.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지만
시인도 아닌 내가
이 시를 읽으며 끄덕끄덕 하고 있다면
나는 무엇으로 이 지상을 살아야 하나?
시인에게도 시적인 삶이 땀나는 일이거늘
시인 근처에도 못가는 나에게
시적인 삶은 또 얼마나 버거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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