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마음

귀뚜라미 우는 밤들...

kiku929 2014. 8. 29. 00:03

 

 

                                                                                                                             대천 앞 바다...

 

 

 

 

언젠부턴가 우리집 베란다 쪽에서 저녁무렵이면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 소리는 새벽 한 두 시까지 이어지는데 재밌는 것은 세 시가 넘으면 귀뚜라미도 잠에 드는지 소리가 끊긴다는 것이다.

귀뚜라미 소리에는 가을 내음이 물씬하다.

마치 울음 소리 하나 하나마다 촉촉한 물기를 털어내고 있는 것처럼  저 소리는 메마르지 않으면서 어딘가 서늘한다.

덕분에 올 해는 가을이 빠르다.

 

소리만큼 하나의 공간을 순식간에 점령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니 공간의 분위기를 좌우 하는 것은 바로 청각에 의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음악은 그때그때 기분에 맞춰서, 아니면 일부러라도 기분전환을 위한 나의 선택권이 주어지지만

지금 들리는 저 귀뚜라미 소리는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일방적이다.

그것도 날마다 똑같이...

그래서 나는 요즘 밤마다 거의 같은 분위기의 공간에다 무방비 상태로 내 자신을 놓아둘 수밖에 없다.

올 여름 끝이 여느 해보다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저 소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소리는 기억을 불러 온다. 여기 저기서 이것저것 불러와 내 마음 한 곳에다 가지런히 모은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 한 쪽에는 두 평 남짓의 목욕탕이 따로 지어져 있었다.

일본식욕탕이었는데 내가 앉으면 어깨까지 물이 올라올 만큼의 무쇠로 만들어진 커다란 솥이 있었고

외부에서 땔감이나 연탄으로 그 솥의 물을 데우는 방식이었다.

나의 귀뚜라미 소리는 거기서 부터 시작된다.

이 무렵이면 습한 그곳에서 귀뚜라미 서너 마리는 늘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욕조안에 몸을 담그고 앉아 있으면 사방이 적막한 속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만 더욱 도드라졌다.

지금 내가 느끼는 서늘하고 촉촉한 그 소리는 사실 어린 나이에 내가 들었던 느낌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소리는 내 유년으로 나를 데리고 가고 나는 거기서 엄마와 아빠 그리고 우리 친정집 마당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돌아갈 수 없는, 다시 만져질 수 없는, 다시 볼 수 없는 것들은 시간이 쌓여가면서 점점 더 아름답게 미화되고 포장되어간다.

그래서 어느 순간은 숨이 막힐 것처럼 미치도록 그리운 때가 오기도 한다.

 

나는 여름 끝을 좋아한다.

여름 끝 무렵의 하얀 가루처럼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을 특히 좋아하고, 

여름이 막 모퉁이를 돌아 그림자만 남겨지는 무렵의 바다를 좋아한다.

창밖을 내다보면 모든 게 아득하게 느껴지는 꿈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나라는 존재는 이방인처럼 낯설고,

내 마음에 이유없이 통증이 밀려오는 계절,

그러면서도 때로는 설레고 또 한없이 차분해지는 그런 계절이 나에게는 바로 여름 끝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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