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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앓이

kiku929 2014. 9. 27. 04:06

 

 

 

 

 

지금은 새벽 세 시가 넘은 시간.

약간의 졸음이 있기는 하지만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밤...

금요일 밤은 마냥 풀어지고 싶다.

엄밀히 말해 지금은 토요일이지만 나에게 밤은 언제나 지나간 날에 속하는 것일 뿐이므로...

 

요즘은 금요일을 '불타는 금요일'을 줄여서 '불금'이라고 부르지만 난 금요일 저녁이 제일 한가롭고 조용하다.

그리고 이렇게 혼자 있을 때마다 수시로 밀려오는 그리움이 있다면 그것은 바다다.

태어나 오리 새끼가 처음 본 대상을 자기 엄마로 각인하게 되는 것처럼

바다와 가깝게 자란 내 몸 속에는 바다가 각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난 경험해 본 적이 없지만 내가 바다에서 해보고 싶은 것 중의 하나는

까만 밤, 바다는 보이지 않고 파도 소리만 들리는 백사장에 앉아 시간을 잊은 채 하염없이 있는 것...

시공간을 초월한 느낌 속에서 양각처럼 만져지는 나라는 혼자를 손으로 오롯이 느끼며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고 싶다.

내가 나의 모든 것을 진심으로 이해해줄 수 있다면 나는 좀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자신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쩌면 자신을 가장 받아들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못난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것, 자신에 대해서는 조금도 속일수가 없다는 것...

신만이 알고 있을 거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신은 자신이 되는지도 모른다. 자신에 관한 한 절대적으로...

(말이 옆으로 샜다.) 다시 바다 이야기로...

 

이쯤이 되면 바다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바다는 지금이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뜨거운 열기, 시끌벅적한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후의 고요는 한층 더 적막하고 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서해바다에서 한층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 한가지 지금은 춥거나 덥지 않아 바다에 오래오래 머물러 있어도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겨울 바다에 대한 낭만을 갖고 막상 찾아가게 되면 거센 바닷바람 때문에 얼마 머무르지를 못하고 덜덜 떨다가

서둘러 차 안으로 들어와 멀찌감치 구경하게 되는 게 고작이다.

아니면 여름은 그야말로 바다에 빠져들어 즐길 수는 있지만 그것은 내가 그리워하는 바다의 모습은 아니다.

 

이런 글을 쓸 때마다 난 사람이 왜 이런 사소한 일 하나도 제대로 누리지를 못하고 사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거창한 꿈도 아닌데 때에 맞춰 바다를 보고 단풍을 보고 꽃을 보는 일들, 혼자서 영화보고 비오는 날 포장마차에서

우동 한 그릇 먹는 일들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를...

사실은 내가 나를 묶어두는 것이라는 걸 알지만 해마다 그 순간들은 여차여차한 이유,

수시로 만들어내는 수십가지가 넘는 이유로 지나가버리곤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렇게 사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

인생이 뭐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내가 한 발 한 발 걷고 있는 이 순간들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한 발을 걸어가는 순간의  즐거움을 놓쳐버린다면 인생의 즐거움도 놓치고 마는 것이라는 걸...

점묘화에서 붓으로 찍은 수많은 점들 하나하나가 그림으로 완성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