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사라진 그 집
김춘
나선 속으로 들어간 빛이 좀처럼 나오질 않는다. 빛을 찾아 꽃은 떠나고 텅 빈 꽃밭, 구름이 뭉개로 앉아 있다.
대지의 정강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풍문을 핥으며, 길들지 않은 바람이 낮게 엎드린다. 길개가 구름의 무릎 위에 뒷
발을 얹고, 꽃밭에 영역표시를 한다. 구름과 눈이 마주치자 캐갱 헛기침이다. 큼큼 지린내를 품은 바람을 세워
코뚜레를 건다.
길 위에 찍힌 꽃잎이 파랗게 질려 있다. 서둘러 흡광吸光한 흔적, 기습당한 인조 등의 목덜미에서 꽃대가 올라온다.
문이 닫힌 집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까만 창문을 열고 순한 눈동자가 구름을 꺾는다. 꽃병에 구름이 꽂혀 있다.
이제 집은 비행체이다. 비행체가 축출한, 빛이 사라진 쪽으로 목이 기울어진 연한 사람들, 귓속에 집어넣은 풍문이
아픈, 가끔은 뜨거운 목숨을 의자에 걸어놓고 와버리는.
-시집 <불량한 시각>/ 김춘, 리토피아포에지,2012
*
빈 집을 바라보면 참 많은 생각들이 스쳐간다.
그래서 빈 집은 시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게 되나보다.
비현실적인 언어와 비유로 시가 쓰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빈 집의 이미지나 빈 집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은
신기하게도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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