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염전
김경주
죽은 사람을 물가로 질질 끌고 가듯이
염전의 어둠은 온다
섬의 그늘들이 바람에 실려온다
물 안에 스며 있는 물고기들,
흰 눈이 수면에 번지고 있다
폐선의 유리창으로 비치는 물속의 어둠
선실 바닥엔 어린 갈매기들이 웅크렸던 얼룩,
비늘들을 벗고 있는 물의 저녁이 있다
멀리 상갓집 밤불에 구름의 쇄골이 비친다
밀물이 번지는 염전을 보러 오는 눈들은
저녁에 하얗게 증발한다
다친 말에 돌을 놓아
물속에 가라앉히고 온 사람처럼
여기서 화폭이 펴지고 저 바람이 그려졌으리라
희디흰 물소리, 죽은 자들의 언어 같은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을 그 소리의 영혼이라 부르면 안 되나
노을이 물을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노을 속으로 물이 건너가는 것이다
몇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들을 본다
물의 내장들을 본다
-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 김경주
흰눈이 내리는가 싶더니 상갓집 밤불처럼 노을이 내리는 염전, 그곳에서 시인은 소금의 소리, 즉 "죽은 자들의 언어"
와 같은 그 "희디힌 물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소금의 빛, 그 "몇 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을 본다. 소금의
근원인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은 모든 생명의 시원이자 종말이다. 그러니까 존재의 끝과 시작을 듣고 보는 셈이다.
우리의 내장이 이리 어둡고 이리 쓴 이유일 것이다. 물의 내장이 그러하고, 생의 내장이 그러한 것처럼.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1> p80 / 정끝별 해설
*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땐 별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자꾸만 읽을수록 가슴에 파고든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 읽을 때마다 새롭게 그려지는 이미지, 읽을 때마다 시인의 감각에 놀란다.
시는 한 번에 읽어서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 곱씹어봐야만 알 수 있는 시가 좋다고 한다.
염전에 대한 시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 이 시가 최고가 아닐까...개인적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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