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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포근한 날이 계속되더니 어제는 봄비같은 비가 내렸다.
오늘은 쌀쌀한 날이다. 그런데도 봄이 멀지 않았다고 바람이 말해주는 것만 같다.
계절이 바뀌는 무렵이면 공기가 달라진다. 형용하기 어려운 아주 미세한 공기의 무게와 농도같은.
올해는 분갈이를 빨리 시작했다.
해마다 분갈이를 하다보면 어김없이 손가락 관절통이 찾아오고 몸살을 앓는다.
그래도 마음이 이미 그곳에 가 있기에 아파도 날마다 꽃들을 손본다.
오래된 제라늄은 과감히 가지치기를 했다. 그리고 가지치기한 가지들을 다시 삽목했다.
늦가을에 삽목해놓은 제라늄이 잘 자라다 내가 일주일 동안 집을 비운 사이 한파가 몰려와
그만 얼어버리고 말았다.
너무 따뜻했던 겨울이었기에 내가 방심했던 탓이겠다.
백화등, 마삭줄기, 그리고 목초류들을 많이 잘라줬더니 베란다의 창이 모처럼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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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조정하는지 봄이 될 때면 항상 느끼게 된다.
뭔가 움트기 시작한다는 것은 자연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움이 튼다는 것은 靜에서 動으로의 움직임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무가 물을 퍼올리는 것처럼 마음도 슬슬 가동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같은 경우는 대부분 꽃을 향해, 그리고 책을 향해 움직이게 된다.
***
지난 달, 내가 존경하는 신영복 선생님께서 타계하셨다.
그분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나에게 정신적인 깨달음을 준 책이었고 저자로서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존경심을 갖게 해준 책이었다.
그 분이 바라보는 역사관, 그리고 소외된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 결코 연민같은 것이 아닌 이해의 시선,
인문학이 진정 어떤 것이어야 하고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논리들이 가슴으로 스며든다.
아마도 그분이 살아온 삶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에서 궁극의 감동이란 것은 결국 예술에 담겨진 그 사람의 정신에서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화려한 글솜씨라고 해도 실천없는 삶이라면 감동은 거기까지일 뿐이다.
잘 만들어진 공예품을 대할 때 같은.
요즘은 그 분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지금은 그분이 번역한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를 읽고 있다.
꽃을 손보고 책을 읽는 이러한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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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지나고 처음 맞은 휴일,
모처럼 한가롭게 보낸다.
창밖 모과나무의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저 흔들림을 보고도 난 알 수 있을 것 같다.
바람이 어디에서 부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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