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보고 싶은 오빠 / 김언희

kiku929 2016. 4. 29. 22:24



보고 싶은 오빠 



김언희

 

 


1

   난 개하고 살아, 오빠, 터럭 한 올 없는 개, 저 번들번들한 개 하고 , 십 년도

넘었어, 난 저 개 가 신기해, 오빠, 지칠 줄 모르고 개가 되는 저 개가, 오빠, 지

칠 줄 모르고 내가 되는 나도

 

2

   기억나, 오빠? 술만 마시면 라이터 불로 내 거웃을 태워 먹었던 거? 정말로

개새끼였어, 오빤, 그래도 우린 짬만 나면 엉기곤 했지, 줄 풀린 투견처럼, 급

소로 급소를 물고 늘어지곤 했었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라니, 뭐니, 헛소리

를 해대면서

 

3

   꿈에, 오빠, 누가 머리 없는 아이를 안겨 주었어, 끊어질듯이 울어대는 아

이를, 머리도 없이 우는 아이를 내 품에, 오빠 죽는 꿈일까 ...... 우린 해골이

될 틈도 없겠지, 오빠, 냄새를 풍겨댈 틈도, 썩어 볼 틈도 없겠지, 한번은 웃

어보고 싶었는데, 이빨을 몽땅 드러낸 저 웃음 말야

 

4

   여긴 조용해, 오빠, 찍 소리 없이 아침이 오고, 찍 소리 없이 저녁이 오고,

층층이 찍 소리 없이 섹스들을 해, 찍 소리도 없이 꿔야 할 꿈들을 꿔, 배꼽

앞에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오빠, 우린 공손한 쥐새끼들이 됐나 봐, 껍질이

벗겨진 쥐새끼들, 허여멀건, 그래도

 

5

  그래도, 오빠, 내 맘은, 내 마음은 아직 붉어, 변기를 두른 선홍색 시트처럼,

그리고 오빠, 난 시인이 됐어, 혀 달린 비데랄까, 모두들 오줌을 싸게 만들어,

하느님도 오줌을 싸실 걸, 언제 한번 들러, 오빠, 공짜로 넣어줄게

 




*

오늘 강의 중,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셨다.

"시는 이래이래서 좋다. 시를 마치 시체처럼 해부하고 분석해서 그러고 보니 좋다 할 땐 이미 늦었다.

그때는 이미 좋은 시가 아니다. 그냥 어쩐지 좋고, 그냥 어쩐지 맘에 드는 그러한 시를 써야 한다."

이 '어쩐지 좋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시를 써야 한다고.


그런 시 중 하나가 바로 이 '보고 싶은 오빠'가 아닐까 싶다.

해부하고 분석하기가 쉽지 않은 시, 시어들이 직접적이고 강렬하여 조금은 불편해질 수도 있는 시,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쩐지' 슬픔이 깃들어 있다.

여기서 오빠를 나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

화자에게 과거가 되어버린 생이 충만했던 한 시절을 공유했던 사람으로 읽어본다.

죽은 남편일 수도, 죽은 애인일 수도 있는...

그래서 아직 붉다는 그 마음이 도리어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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