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꽃
송찬호
박카스 빈 병은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신다가 버려진 슬리퍼 한 짝도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금연으로 버림받은 담배 파이프도 그 낭만적 사랑을 냉이꽃 앞에 고백하였다
회색 늑대는 냉이꽃이 좋아 개종을 하였다 그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긴 울음을 남기고 삼나무 숲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냉이꽃이 내게 사 오라고 한 빗과 손거울을 아직 품에 간직하고 있다
자연에서 떠나온 날짜를 세어온다
나는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 송찬호시집 『분홍 나막신 』중에서
*
박카스나 슬리퍼나 담배파이프는 모두 쓰다가 남겨지거나 버려진 것들,
그것들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은 냉이꽃, 바로 자연의 품일 것이다.
나는 아직 회색 늑대의 마음쯤이리.
나는 늘 냉이꽃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그 언저리를 배회한다.
언젠가 나는 빗과 손거울을 갖고 냉이꽃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단정하게 앉아
머리를 빗으며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보는 그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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