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서 아침 전화가 왔다.
비가 온다고, 거기는 비가 오지 않느냐고.
흐린 날씨다. 아마 저녁이면 여기도 비가 내릴까.
올봄에는 몸의 컨디션이 계속 좋지 않다. 조금씩 나아지기는 하지만 하루라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는 것 같다.
나에게 아무데도 아프지 않던 날이 있었던 것이 꿈만 같다.
관절이 아픈 것은 그냥 아픈 것이다.
잠깐 왔다 가는 것이 아닌 병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통증에 길들이는 훈련을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나아질 길은 전혀 없을 것이다.
한동안은 그 사실이 우울했다. 그러다가 몇달이 지나고 내가 그 통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서 그 통증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새벽마다 잠에서 깨지만 점점 그 통증에 집중했던 감각들을 무디게 하는 주문을 터득했다고 할까.
통증이라는 것도 사실 추상적인 감각이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통증의 강도는 달라진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아픈지 나 자신도 정확히
객관화해서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몸이 먼저 아프다는 나이드신 분들의 말이 이제는 실감난다.
습기는 몸 속으로도 스며들기 때문에 관절통에는 더욱 안 좋은 것이다.
통증은 다른 통증을 유발한다. 잠을 못자니 머리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니 신체적 활동도 제한된다.
신체적 할동이 제한되면 소화가 안되고 소화가 안되면 위가 쓰리고 불편하다.
그리고 다른 보이지 않는 장기로 계속 그 여파가 퍼진다.
순환이란 그래서 무섭다. 악순환은 악순환으로 계속 이어가려는 관성을 갖게 되고 선순환은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관성을 갖는다.
대체로 악순환의 관성의 에너지가 더 강한 것 같다.
그러나 인간에게 다행스런 것은 저항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던 내가 어느 지점에까지 가면 스스로 일어서게 하려는 정신적 작동이 일어난다.
버티고 견디고 하는 것은 모두 정신적인 영역이다.
사람은 육체라는 울타리에서 살게 되지만, 그 울타리는 시간의 법칙을 따르게 되지만 다행히 정신은
시간을 거스른다. 시간에 따라 더 강해지고 깨닫게 되고 수용하는 폭도 넓어진다.
말하자면 육체가 담당했던 부분을 정신적으로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발란스를 갖게 되는 것 같다.
아프고나서부터 비가 오는 날이 싫어졌다.
그런데 이제 다시 비 오는 날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몸이 아픈 것을 이제는 껴안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일까.
이제는 무슨 아기가 내 안에 들어와 사는 것 같다.
찜질도 해주고 편안히 쉬게도 해주면서 소화가 안된다고 하면 죽도 끓여 먹인다.
아프면 괜찮아, 조금만 참아, 나아질 거야, 하고 속삭여주기도 한다.
보살펴줘야 하는 아기가 내 몸 안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통증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가는 것이라고...
20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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