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나의 그늘 / 김영승

kiku929 2016. 6. 2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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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늘

 



김 영 승

 

 

내 所有의 그늘

내가 만든

나의 그늘

 

내 몸이 만든

내 몸의 그늘

 

이 뙤약볕 밑에서

나는

내가 만든

나의 그늘

 

내 펄럭이는

옷이 만든 그늘에만 앉아

쉰다

 

아스팥트는

灼熱하고

暴雨는 또

그 아스팔트를 식힌다

 

모과나무와 전나무 사이

 

비를 맞고


빗방울이 맺히고

 

감아오르다가

더는 감아오를 데 없다는 듯

나팔꽃 덩굴은

고개 꼿꼿이 흔들린다

흐린 하늘 향해

하늘 높이

 

피뢰침처럼

 

혹한 처럼



    -김영승 시집『흐린 날 미사일』중에서  (나남,2013)








*


이 시를 읽으면 조정권 시인의 <독락당(獨樂堂) >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는
벼랑꼭대기에 있지만
옛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숴버린 이.



한여름 땡볕에서 자기가 만들어 낸,

소유라고 할 만한 단 하나의 그늘에 쉬고 있는 시인,

그 시인의 모습에서

독락당에 은거하는, 내려오는 길마저 부숴버린 이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나팔꽃은 그런 시인의 모습이기도 하리.

비와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몸으로 감아 오르며

당당하게, 꼿꼿하게 하늘 향해 높이 높이 피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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