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의 아마릴리스
적막
고영민
매년 오던 꽃이 올해는 오지 않는다
꽃 없는 군자란의
봄이란
잎새 사이를 내려다본다
꽃대가 올라왔을
멀고도 아득한 길
어찌 봄이 꽃으로만 올까마는
꽃을 놓친
너의 마음이란
봄 오는 일이
결국은 꽃 한 송이 머리에 이고 와
한 열흘 누군가 앞에
말없이 서 있다 가는 것임을
뿌리로부터
흙과 물로부터 오다가
끝내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 갔을
꽃의 긴 그림자
—《문학동네》2016년 여름호 중에서
*
해마다 피는 아마릴리스가 올 봄에는 오지 못했다.
작년 겨울 집을 비운 사이 몰아친 한파에 얼어죽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작은 뿌리 두 알이 살아 지금 몸을 키우고 있지만 꽃을 맺을 때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는 모른다.
매년 보던 꽃을 보지 못하는 일,
그 꽃이 오던 길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일,
봄이 오는 그 수많은 길 중 하나가 뚝 끊어진 자리로
무심한 햇살이 놀다 가는 일,
그처럼 적막한 일이 또 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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