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처럼
이장욱
나는 정지한 세계를 사랑하려고 했다.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세계를
나는 자꾸 물과 멀어졌으며
매우 견고한 침묵을 갖게 되었다.
나의 내부에서
나의 끝까지를 다 볼 수 있을 때까지.
저 너머에서
조금씩 투명해지는 것들을.
그것은 꽉 쥔 주먹이라든가
텅 빈 손바닥 같은 것일까?
길고 뾰족한 고드름처럼 지상을 겨누거나
폭설처럼 모든 걸 덮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가위바위보는 아니다.
맹세도 아니다.
내부의 뜻밖의 계절을 만드는 나무 같은 것
오늘 아침은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하다
는 생각 같은 것
알 수 없이 변하는 물의 표면을 닮은.
조금씩 녹아가면서 누군가
아아,
겨울이구나.
희미해.
중얼거렸다.
-이장욱 시집『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문학과지성사, 2016)
이 시는 하나의 이미지로 시적 자아의 정체성을 고정하는 것을 스스로 허물어버린다. 언어의 진행은
시적 자아의 인격적 동일성을 박탈하고 익명화한다. 그의 시들에서 '자아의 지배'는 늘 실패한다
"오늘 아침은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하다"라는 문장은 단어의 문장이 아니며, 시의 화자는 간접적인
인용 방식을 통해 그 진술로부터 내적 거리를 만들어 낸다.
'영원한 자아'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자아와 주체는 하나의 시작점이 있어야 하고, 영원이라는
시간대는 시작과 끝을 부정하는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영원을 말하는 것은 주체이지만, 주체의 성립은 영원에
도달할 수 없는 조건이다. 레비나스의 개념을 빌리면 '존재자 없는 존재'만이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을 산다.
시 쓰기는 주체와 자아의 실패를 보여주면서 '존재자 없는 존재'의 언어와 리듬에 한없이 다가간다
글 : 이광호
- 『대산문화, 제 24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리뷰 중에서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경 / 김영승 (0) | 2016.12.20 |
---|---|
불면 / 강정 (0) | 2016.12.18 |
반성 743 / 김영승 (0) | 2016.12.15 |
양 기르기 / 안희연 (0) | 2016.12.15 |
당신의 거처 / 조용미 (0) | 2016.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