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夏至 외 1편 / 김소현

kiku929 2016. 12. 27. 20:21



夏至



김소현



  너는 성냥으로 불을 붙이면 담배 맛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리고 웃었다 그해 여름 우리는 자주 많이 만났다 장마 전선이

북상하고 있다고 했다 너의 이름엔 어쩐지 훈이라는 글자가 들어갈 것 같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썼다 서해안의

해변엔 조개껍질이 많아서 너는 걸으면서 자꾸 찡그리고 웃었다 괴상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고래

들이 집단자살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 너가 묻는다 해안가까지 올라와서 메말라 죽는 거야 로맨틱하다고 생각하지만 너에

게 굳이 말을 꺼내진 않는다 더 나쁘게 말하는 방법은 알아도 덜 나쁘게 말하는 것은 배우질 않아서 우리는 아무렇게나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운다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에 묻혀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목소리를 키우고 키우고 키우고 더 키운다

점점 소리를 지르고 누가 더 소리를 잘 지르나 내기를 하는 것 같다 어쩌면 너를 이해하고 싶지 않다 이해할 수가 없다 오래

걸어서 물집이 잡힌 너의 발바닥을 만지고 있으면 너가 이 발로 내 배를 차 줬으면 좋겠다 차라리 우리가 서로로 인해 슬프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우리의 세계가 흔들리고 끝이 나도 끝이 나지 않는 것 같아서 죽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늘 그렇게 잠에 드는 기분이다 너무 길었다 너무 축축해서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되는 일상이 몇 번 지나갔다





모텔 선인장



김소현



미도리라고 불러주길 바랬다

그게 다정하게 느껴져서


침을 삼키고,

우리가 진짜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은 오늘은 여기는


소주를 조금 나누어 마시고

우리는 서로에게 가능한 한 가장 심한 말을 해 주었다


그런 꿈을 꾸고 일어난 후에도 손가락은 다 잘 붙어 있다


너의 머리카락에서는 내 담배 냄새가 나고

나는 이것이 좀 좋은가 생각하다가

네가 날 어떻게 만졌는지 떠올린다

그건 너무 아무것도 아니어서


창밖에는 조금씩 비가 내린다

조금 더 추워져도 괜찮겠다

몸을 웅크리고

너는 다정하구나 말해본다

그런 건 모르겠어

네가 말을 한다


어쩌면 나는 네가 가장 쉽게 잊을 수 있는 이름

나는 살이 없는 것처럼 튀어나온 너의 뼈를 만진다


-<현대시> (2016년 11월호) 중에서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판화 / 진창윤  (0) 2017.01.03
무화과 숲 / 황인찬  (0) 2016.12.28
풍경 / 김영승  (0) 2016.12.20
불면 / 강정  (0) 2016.12.18
얼음처럼 /이장욱  (0) 2016.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