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플랫폼에서
우리의 죄는 야옹
길상호
아침 창유리가 흐려지고
빗방울의 방이 하나둘 지어졌네
나는 세 마리 고양이를 데리고
오늘의 울음을 연습하다가
가장 착해 보이는 빗방울 속으로 들어가 앉았네
남몰래 길러온 발톱을 꺼내놓고서
부드럽게 닿을 때까지
물벽에 각자의 기도문을 새겼네
들키고야 말 일을 미리 들킨 것처럼
페이지가 줄지 않는 고백을 했네
죄의 목록이 늘어갈수록
물의 방은 조금씩 무거워져
흘러내리기 전에 또 다른 빗방울을 열어야 했네
서로를 할퀴며 꼬리를 부풀리던 날들,
아직 덜 아문 상처가 아린데
몸의 혓바닥이 한 번씩 핥고 가면
구름 낀 눈빛은 조금씩 맑아졌네
마지막 빗방울까지 흘려보내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되어
일상으로 폴짝 내려설 수 있었네
-시집 『우리의 죄는 야옹』중에서 (문학동네 시인선 087)
*
나는 '통과 의례'라는 말은 자주 쓴다.
그 통과의례의 필요성을 나이들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것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한 자리에 마음이 머물게 되는 것이다.
마음에서 걸리는 일, 죄책감, 혹은 때를 놓친 말들, 하고 싶었던 꿈, 어떤 상처 같은 여러가지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그때는 통과의례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정면으로 치뤄내야 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는 비로소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게 된다
나는 지금도 통과의례중이다.
결과는 아무래도 좋다.
통과의례라는 것은 머뭇거리고 기웃거리는 마음을 지금 이 자리에 가져다놓기 위해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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