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고양이 무덤 / 박은정

kiku929 2017. 7. 2. 15:39




고양이 무덤




박은정




내 고양이가 죽으면 어떤 무덤을 만들어줄까

밤은 길고 낮은 멀리 있으니까


죽은 자들의 무덤은 너무 좁고

산 자들의 재앙은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넓다


매일 밤을 사라지지 않으려고 뼛속까지 버텼다


언젠가는 화창터 앞 벤치에 앉아

오래 하루를 보냈다


말할 수 없는 이유들을 잊으려

이유없는 말들을 지껄이고 있었다

검은 사람들이 나를 지워줄 때까지


단풍은 붉고 푸르고 흔들린다

갈라진 심장을 가진 자는

자꾸만 뒤를 본다


완성되지 못한 문장이

유언으로 어울린다는 사실을

죽은 자들은 견딜 수 있을까


고앙이의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

밤의 울음을 길게 운다


망각이 자라는 자리에는

풀 두어 포기


밤새 팽이는 돌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른다





*

장마가 시작된 휴일,

습기 가득한 바람이 창문마다 드나든다.

이 축축함의 감촉이 내 안에 오래전부터 내장되어 있었던 것인지 비로소 이제야 여름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책꽂이에서 시집을 흩어보다가 읽지 않았던 박은정 시집을 꺼내 들춰본다

<고양이의 무덤>이 가장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든 시를 만나 오늘 하루가 또 마음에 든다.

기쁨을 느낄 만한 것들이 곳곳에 많이 있다는 사실이 그 중 가장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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