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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왕 / 김상혁

kiku929 2017. 2. 18. 23:24


                                                                                                          종이로 만든 기쁜 장미 ^^




기쁨의 왕



김상혁



  만일 기쁨을 말한다면 그건 사람의 기쁨이겠지. 기쁜 사람이 매일 찾아가 두 팔로 나무를 안아주었다.

나무는 자라 숲이 되고, 숲은 끝없이 퍼져 해안까지 닿았다, 그렇대도 그것이 나무의 기쁨, 숲의, 바다의

기쁨은 아닌 것이다


  먹는 기쁨, 보는 기쁨, 생각하는 기쁨,

  영혼의 기쁨 같은 건 없다.

  그렇대도 기쁜 영혼 같은 건 있었으면 좋겠다.


  기쁜 남자가 가족을 위해 매년 울타리를 칠하였다. 기쁜 아내가 기쁜 아이를 낳았다. 그들의 행운이

이웃을 웃게 만들었다. 그렇대도 이불을 뒤집어쓴 각자의 행복한 꿈속으로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열매가 쏟아지는 미래, 정성스럽게 채색된 추억, 잠든 이들이 기쁨에 사로잡히는 어둡고 안전한 시간.

거기서 깨어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깨지지 않는 기쁨 같은 건 없다.


  그렇대도 기쁜 영혼이 돌아올 수 있는 기쁜 생활 같은 건 있었으면 좋겠다. 부모가 가방에 챙겨준

물건들이 하나둘 망가지는 동안 기쁜 아이는 자라 많은 아이들이 되었다. 거기서는 기쁜 나무를 심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그곳의 기쁨이다.

  먹는 기쁨, 보는 기쁨, 옛날 사람을 떠올리는 기쁨,

  죽은 사람의 기쁨 같은 건 없다.

  그렇대도 기쁜 영혼이 돌아올 수 있는 기쁜 생각 같은 건 있었으면 좋겠다. 기쁜 생각으로 바라보는

기쁜 물결이 있었으면 좋겠다.




-김상혁 시집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중에서





*

'기쁘다'는 말,

살면서 많이 쓰는 말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떤 말을 자주 많이 쓴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 안에 그 말의 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쁘다'는 말이 내 안에서 늘 거주할 수 있도록 올 해는 기쁨의 집을 지어줘야겠다.

그래서 자주, 틈만 나면, 기쁘다고 말하리라.

이런 생각을 하니까 정말 내 마음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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