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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죄는 야옹 / 길상호

kiku929 2017. 2. 14. 23:27



                                                                                전철 플랫폼에서


우리의 죄는 야옹



길상호



아침 창유리가 흐려지고

빗방울의 방이 하나둘 지어졌네

나는 세 마리 고양이를 데리고

오늘의 울음을 연습하다가

가장 착해 보이는 빗방울 속으로 들어가 앉았네

남몰래 길러온 발톱을 꺼내놓고서

부드럽게 닿을 때까지

물벽에 각자의 기도문을 새겼네

들키고야 말 일을 미리 들킨 것처럼

페이지가 줄지 않는 고백을 했네

죄의 목록이 늘어갈수록

물의 방은 조금씩 무거워져

흘러내리기 전에 또 다른 빗방울을 열어야 했네

서로를 할퀴며 꼬리를 부풀리던 날들,

아직 덜 아문 상처가 아린데

몸의 혓바닥이 한 번씩 핥고 가면

구름 낀 눈빛은 조금씩 맑아졌네

마지막 빗방울까지 흘려보내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되어

일상으로 폴짝 내려설 수 있었네



-시집 『우리의 죄는 야옹』중에서 (문학동네 시인선 087)







*

나는  '통과 의례'라는 말은 자주 쓴다.

그 통과의례의 필요성을 나이들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것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한 자리에 마음이 머물게 되는 것이다.

마음에서 걸리는 일, 죄책감, 혹은 때를 놓친 말들, 하고 싶었던 꿈, 어떤 상처 같은 여러가지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그때는 통과의례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정면으로 치뤄내야 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는 비로소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게 된다


나는 지금도 통과의례중이다.

결과는 아무래도 좋다.

통과의례라는 것은 머뭇거리고 기웃거리는 마음을 지금 이 자리에 가져다놓기 위해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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