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손의 처녀들
이이체
육체는 빛을 이해하기 위해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는 직업이 죄인이다
누구보다도 죄를 잘 짓는다
하얀 기척
야생을 벗어나 죽어가는 늙은 이리처럼
나누어 줄 수 없는 것을 나누어 주고 싶을 때마다
느껴지는 초라한 참담이 있다
먼 이국을 고향에서 그리워하는,
향수鄕愁를 거꾸로 앓으면서
희생양의 성좌
죄 없는 자들로부터 병든 삶을 옮아
나는 시든 꽃으로 만개한다
손등으로 벽을 밀어본다
살쾡이들이 다가오는 묽은 저녁
알에도 표정이란 것이 있다
하얀 기척
허구의 귀로 환한 속삭임을 줍는다
*
만개한 꽃이지만 이미 시들었고
젊지만 이미 죄가 많다.
예민한 사람은 죄를 잘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스로 자처한 죄 또한 많을 터이니...
육체가 빛을 이해하기 위해 그림자를 드리운다면
시인은 무엇을 이해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쓰기 위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내 놓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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