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반성 608 / 김영승

kiku929 2017. 7. 3. 16:11



반성 608




김영승




어릴 적의 어느 여름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 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主는

나를 놓아 주신다




-시집 『반성』중에서 / (민음사,1987)






*

선생님의 시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다.

시집『반성』이 나온지 30년이 되었으니 이 시가 쓰여진 지도 30년 이전이다.

선생님의 나이로 따지면 서른 살 이전에 이 시를 쓰신 것이다.


사석에서 자신의 묘비병으로 이 시를 쓰겠노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시기도 하였는데

선생님의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가늠할 수 있기에 숙연해진다.


선생님이 편찮으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지금은 당연하게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있지만 언젠가 듣지 못하게 된다면

열심히 더 많이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삼 소중해지는 시간이다.


빨리 건강해지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생님의 시집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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