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608
김영승
어릴 적의 어느 여름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 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主는
나를 놓아 주신다
-시집 『반성』중에서 / (민음사,1987)
*
선생님의 시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다.
시집『반성』이 나온지 30년이 되었으니 이 시가 쓰여진 지도 30년 이전이다.
선생님의 나이로 따지면 서른 살 이전에 이 시를 쓰신 것이다.
사석에서 자신의 묘비병으로 이 시를 쓰겠노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시기도 하였는데
선생님의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가늠할 수 있기에 숙연해진다.
선생님이 편찮으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지금은 당연하게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있지만 언젠가 듣지 못하게 된다면
열심히 더 많이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삼 소중해지는 시간이다.
빨리 건강해지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생님의 시집을 읽는다.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선을 떠나며 / 우대식 (0) | 2017.08.01 |
---|---|
신문 / 유종인 (0) | 2017.07.31 |
푸른 손의 처녀들 / 이이체 (0) | 2017.07.02 |
고양이 무덤 / 박은정 (0) | 2017.07.02 |
기쁨의 왕 / 김상혁 (0) | 2017.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