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푸른 손의 처녀들 / 이이체

kiku929 2017. 7. 2. 21:58



푸른 손의 처녀들




이이체




육체는 빛을 이해하기 위해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는 직업이 죄인이다

누구보다도 죄를 잘 짓는다


하얀 기척


야생을 벗어나 죽어가는 늙은 이리처럼


나누어 줄 수 없는 것을 나누어 주고 싶을 때마다

느껴지는 초라한 참담이 있다


먼 이국을 고향에서 그리워하는,

향수鄕愁를 거꾸로 앓으면서


희생양의 성좌


죄 없는 자들로부터 병든 삶을 옮아

나는 시든 꽃으로 만개한다


손등으로 벽을 밀어본다


살쾡이들이 다가오는 묽은 저녁

알에도 표정이란 것이 있다


하얀 기척


허구의 귀로 환한 속삭임을 줍는다






*


만개한 꽃이지만 이미 시들었고

젊지만 이미 죄가 많다.


예민한 사람은 죄를 잘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스로 자처한 죄 또한 많을 터이니...


육체가 빛을 이해하기 위해 그림자를 드리운다면

시인은 무엇을 이해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쓰기 위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내 놓은 것일까.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문 / 유종인  (0) 2017.07.31
반성 608 / 김영승  (0) 2017.07.03
고양이 무덤 / 박은정  (0) 2017.07.02
기쁨의 왕 / 김상혁  (0) 2017.02.18
우리의 죄는 야옹 / 길상호  (0) 2017.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