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읽었다.
최근 공지영의 에세이를 읽으며 이 책의 이름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도
내 기억 속에는 그다지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다만 그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부분적으로 기억하듯이 몇몇의 이미지만 떠오를 뿐.
그리하여 다시 책을 펼치게 되었다.
이젠 더 많은 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매번 신기한 것은 책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저 안개속을 헤매는 기분같은, 선명치 않은, 불확실한 이야기들이 지루하기조차 했던 책이
다시 읽게 되었을 땐 작가가 들려주고픈 말에 보다 귀기울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한 기억상실증의 남자가 흥신소의 일을 접고나서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하는 걸로
이 소설을 시작된다.
그런만큼 모든 것이 미궁 속이다.
사진 속의 사람, 그리고 그를 아는 사람들을 계속 추적해가며 그는 자신이 그 남자 였는지, 혹은 그 여자의 애인이었는지,
상상하며 기억을 살리기에 애를 쓴다.
자신은 어떤 사람의 인생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들려주는 기억의 편린들이 나중에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고
그 자신 어떤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리게 되면서 과거의 시간들이 형체를 갖추게 된다.
그는 순간순간 자문한다.
과연 과거를 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하고.
과거란 수증기와 같아서 겨우 한 장의 사진, 혹은 과거 잠시 알았던 사람들의 기억의 한 부분로서 존재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나마 사진은 사라지면 그뿐이며 기억은 시간 속에 묻혀버려 어떤 계기로 두드려주지 않으면
기억은 문을 열고 나오지 않는다.
처음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 소설을 쓰게 된 것인지 모른다.
우리들이 어느날 여름의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 속에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도 함께 남아있지만
우리들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것이다.
모래위 발자국이 겨우 몇 초만을 기억하고 지워내는 것처럼...
주인공의 이름 '기 롤랑"에서 "페드로"가 되기까지의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들을 따라가며
짜집기하듯 한 사람의 생애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흥미롭다.
사는 건 퍼즐맞추기 게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나면 나의 발자국이 허공을 밟고 온 것처럼 허무해지지만 그래도 그 기억 속에는 아련함과
아름다운 슬품이 배여있다.
그 두가지가 우리의 인생을 보다 아름답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이 과거를 돌아보는 일에 회의를 가지면서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것도 그 아름다운 그림자에 대한
매력때문은 아니었을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간...
지금 이 시간, 누군가, 어딘 가에서 나를 우연히 떠올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걸어왔던 시간 속에 잠시 스쳤던 어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얼마전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던 나를, 혹은 아주 옛날 내 기억에도 없는 나의 어떤 모습을...
그렇게 나라는 사람은 존재하는 것이다.
떠도는 빛처럼...
2010.1.11
한 사람의 일생으로부터 남는 것은 무엇일까?
저마다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이 따뜻한 체온의 '나'로부터 결국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낡은 과자통 속에서 노랗게 바래져가는 몇 장의 사진들, 지금은 바뀌어버린 지 오래인 전화번호들,
차례차례로 사라져가는 몇 사람의 증인들......
그리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마치 그 사람이 존재했었는지 어쨌는지도 확실치 않아질 때까지.
우리가 이 땅 위에 남기는 그 자취의 '무(無)', 흩어지는 구름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경제적으로
대가다운 솜씨로 드러내줌으로써 파트릭 모디아노의 최대의 걸작을 만든다.
역자 후기 -잃어버린 삶의 자취를 찾아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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