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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하여 / 이승훈

kiku929 2018. 2. 3. 12:01






고통에 대하여




이승훈




고통이 견딜 수 없는 것은 고통을 피할 수 없기 때문

이다 고통을 피할 수 있다면 고통받지 않았으리라 그

해 가을 저녁도 피할 수 없었다 내가 고통에 시달린

건 거기 고통이, 고통이라는 이름의 물건이, 책상이,

술집이 거울이 있었기 때문이다


벗어날 수도 피할 수도 없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고통

받습니다 항구가 있다면 배를 타고 떠났을 것이다 고

통 속에 항구가 있다면 물론 역이 있다면 기차를 타고

도망갔겠지요 그러나 항구가 있고 역이 있어도 떠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다른 항구에 닿고 다른 역에 닿기

때문입니다


항구에서 항구로, 역에서 역으로 떠나는 삶, 이 회귀,

이 돌아옴, 결국 고통 속엔 코스모스도 없습니다



- 이승훈 시집『나는 사랑한다』(세계사 ,1997)중에서





*

시학 이론 권위자 이승훈 시인 별세16일 숙환으로… 발인 19일 시인협회장
  • 신성민 기자
  • 승인 2018.01.17 17:35

한국 시학 이론의 권위자이자 원로 시인인 이승훈 한양대 명예교수<사진>가 1월 16일 오후 11시 2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특2호실)에 마련됐다. 장례는 19일 아침 9시에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치르며, 발인은 오는 19일 아침 10시에 진행된다. 장지는 춘천 가족공원묘지.

유족으로는 부인(최정자 여사)과 아들 상규(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 딸 다영, 며느리 김문정(일산 명지병원 의사), 사위 김성한(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교수) 씨 등이 있다.

선불교·포스트모더니즘 결합해
한국적 탈근대 이론 지평 열어


194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이승훈 교수는 1962년 4월 박목월 시인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해 1972년까지 <현대시> 동인으로 활동했다. 박사 과정 중이던 1980년에 한양대 인문대 국문과 조교수로 부임해 2008년까지 정년퇴임하기까지 교편을 잡았다.

이승훈 교수는 한국의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이론가였다. <모더니즘시론>, <포스트모더니즘시론>, <해체시론> 등의 저작을 통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학이론을 정립했다.

또한, 법호가 방장(方丈)일 정도로 독실한 신심을 가진 불자였던 이승훈 교수는 선과 시학, 포스트모더니즘을 결합시키는 연구를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이는 그가 보여준 저작들에서 잘 드러난다.

기호학의 시각에서 선사들의 공안을 해석한 <선과 기호학>, 선의 시각에서 아방가르드 예술을 해석한 <아방가르드는 없다>, 선시를 중심으로 하이데거 철학을 해석한 <선과 하이데거> 등을 통해 선의 시학과 시 쓰기를 모색했다.

이런 공로로 이승훈 교수는 2013년 현대불교문학상, 2016년 만해 대상 문예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신성민 기자  motp79@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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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시인의 시집을 읽는다.

죽은 시인의 시집을 읽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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