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월의 방 / 권대웅

kiku929 2018. 2. 4. 02:31





2월의 방 




권대웅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한줌 햇빛이 박하사탕 같다

환해서 시린 기억들

목젖에 낮달처럼 걸려

봄바람마저 삼켜지지 않을 때가 있다

고요속에 있던 그늘의 깊은 우물로

돌멩이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

나뭇가지에 쌓인 눈의 무게를 못 이겨

쩡! 하고 부러지는 소나무의 이명이

온 산을 메아리로 돌다가

내 몸을 지나갈 때 나는 들었다

생이 버티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낮에 뜬 반달이 겨울 들판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 같다

구름이 살고 있는 집

정처 없이 가난했던 사랑은

따뜻한 날이 와도 늘 시리고 춥다

세상에 봄은 얼마나 왔다 갔을까

바람 속에서

엿장수 가위질 같은 소리가 들린다

째깍째깍 오전 열한 시의 적막한 머리카락이

혼자 겨울을 난 방에 꿈틀거린다



- 시집 나는 누가 살다간 여름일까( 문학동네, 2017) 중에서




*

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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