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봄 / 김광섭

kiku929 2010. 1. 14. 20:41

 

                          

 

 

 

     봄

 

 

                    김광섭


얼음을 등에 지고 가는 듯
봄은 멀다
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보실 피어서
처음 노란 빛에 정이 들었다

차츰 지붕이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고
집 사이에 쌓인 울타리를 헐 때도 된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먼 데서부터 시작할 때도 온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절
모든 거리가 풀리면서
멀리 간 것이 다 돌아온다
서운하게 갈라진 것까지도 돌아온다
모든 처음이 그 근원에서 돌아선다

나무는 나무로
꽃은 꽃으로
버들강아지는 버들가지로
사람은 사람에게로
산은 산으로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그 근원에서 상견례를 이룬다

꽃은 짧은 가을 해에
어디쯤 갔다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는 봄해를 따라

몇 천리나 와서
오늘의 어느 주변에서
찬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다락에서 묵은 빨래뭉치도 풀려서
봄빛을 따라나와
산골짜기에서 겨울 산 뼈를 씻으며
졸졸 흐르는 시냇가로 간다

 

 

 


 

날이 찹니다.
오늘은 봄이 오는 발걸음이 더디군요.

 

이제 어느 길위에선가 헤어지는지도 모르고 돌아선 것들이

봄해를 따라 모두 돌아와

끼리끼리 한 곳에 모여 도란도란 한 시절을 보내게 될 봄,

 

하지만 길을 잃어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어디선가 헤매는 미아들도 있을 테지요.

새들의 대열을 찾지 못하고 혼자 저 먼 땅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 철새,

꽃진 자리는 있는데 봄이 다 갈 때까지 꽃이 피어나지 않는 적막한 자리,

뿌리에서 길을 찾지 못해 물 오르지 않은 마른 가지들...

 

내년이면 모든 만물이 하나도 빠짐없이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내 눈길에 빈자리 하나도 닿지 않는,

어여쁘기만 한 봄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르는 척, 아프다 / 길상호  (0) 2010.01.14
오래된 질문 / 이덕규  (0) 2010.01.14
한순간 / 이정자  (0) 2010.01.14
한 아름의 실감 / 유홍준  (0) 2010.01.14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나태주   (0) 2010.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