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질문
이덕규
땅 파고 씨앗 심는 일이 흙에게
던지는 질문이라면 그 질문 곱씹어 뱉어
제 새끼 입에 넣어주듯
푸릇푸릇 올라오는 싹은 답이다
전혀 딴소리를 하는 것인지
질문과 답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저 모른 척하지 않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일이 농사라면
평생 똑같은 질문 던지고
똑같은 답안지 받아들었던
씨알 좋은 농부를 누대에 걸쳐 파종하듯
수없이 흙 속에 묻었지만,
지금껏 싹 틔우고 주렁주렁
신품종 햇곡 같은 사람 맺어본 적 없으니
사람은 아직 답이 없다
다만, 늘 질문만 던지던 농부가
흙 속에 묻혀 온몸으로
풀리지 않는 그 고등수학 같은 씨앗의
발아 함수를 풀다가, 풀다가
결국 몸 풀어 그 단순한 흙의 품속으로
스며들 뿐이니, 콩 심은 데 콩 주고
팥 심은 데 팥 주는데
사람 심은 자리에
사람주지 않는 것은, 농부의 마음이다
흙의 넓은 가슴에 얼룩진 사람 그늘이다
끝내, 흙의 깊은 멍 자국이다
* 이덕규 시집 <밥그릇 경전>,실천문학, 2009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는
그 단순한 섭리를 사람에게서
찾다 찾다가, 묻다 묻다가
마음에 멍 들면 흙에게로 갈까나?
흙에게 씨앗 하나 던져주면 흙은 새싹 하나 머리밀어 올려주면서
그렇게 정답게 살아볼까나?
흙에게 왜 너처럼은 아니냐고 날마다 물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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