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김광섭
얼음을 등에 지고 가는 듯
봄은 멀다
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보실 피어서
처음 노란 빛에 정이 들었다
차츰 지붕이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고
집 사이에 쌓인 울타리를 헐 때도 된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먼 데서부터 시작할 때도 온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절
모든 거리가 풀리면서
멀리 간 것이 다 돌아온다
서운하게 갈라진 것까지도 돌아온다
모든 처음이 그 근원에서 돌아선다
나무는 나무로
꽃은 꽃으로
버들강아지는 버들가지로
사람은 사람에게로
산은 산으로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그 근원에서 상견례를 이룬다
꽃은 짧은 가을 해에
어디쯤 갔다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는 봄해를 따라
몇 천리나 와서
오늘의 어느 주변에서
찬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다락에서 묵은 빨래뭉치도 풀려서
봄빛을 따라나와
산골짜기에서 겨울 산 뼈를 씻으며
졸졸 흐르는 시냇가로 간다
날이 찹니다.
오늘은 봄이 오는 발걸음이 더디군요.
이제 어느 길위에선가 헤어지는지도 모르고 돌아선 것들이
봄해를 따라 모두 돌아와
끼리끼리 한 곳에 모여 도란도란 한 시절을 보내게 될 봄,
하지만 길을 잃어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어디선가 헤매는 미아들도 있을 테지요.
새들의 대열을 찾지 못하고 혼자 저 먼 땅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 철새,
꽃진 자리는 있는데 봄이 다 갈 때까지 꽃이 피어나지 않는 적막한 자리,
뿌리에서 길을 찾지 못해 물 오르지 않은 마른 가지들...
내년이면 모든 만물이 하나도 빠짐없이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내 눈길에 빈자리 하나도 닿지 않는,
어여쁘기만 한 봄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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