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송재학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水路를 따라 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바람으로 막아 주네
결코 눈뜨지 말라
지금 한 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 가득 찬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의 무늬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뜨면 여느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을 만질 때
나는 새 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음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한식인 어제 엄마 아빠 무덤의 잔디를 새로 입혔다.
난 언니들이랑 산소옆 등나무 아래에 돗자리 깔고 앉아 즐겁게 웃고 떠들며 놀았다.
우리 친정집의 추억에는 산소를 빼면 별 할 말이 없을 정도라는 말을 하면서...
그건 사실이다.
아빠가 3대 독자여서 돌봐야 할 묘들도 유난히 많았고
우리집에선 산소에 가는 일이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이는,
소풍가는 일처럼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제 일하시는 분들이 이 집처럼 식구들 많이 모인 걸 본 적이 없다며
자기들이 되레 기분 좋다고 말해주시는데 그 말에 우리도 기분이 좋아졌다.
봄바람이 부는데 마치 엄마 아빠의 손길만 같았다.
이쁘다고, 잘 살라고 날 쓰다듬어주는 것만 같아
그 바람결에 내 얼굴을 가만 가만히 맡기고 앉아 있었다.
순한 어린 짐승처럼,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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