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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합창 / 최영미

kiku929 2010. 1. 15. 17:56

 

                       

 

 

 

 

   자연의 합창

 

 

                          최영미

 

 

빗물에 떠내려가는 유년의 추억들.

 

장마철에 개울물 불어나는 콸콸

비바람에 나뭇가지 부러지는 딱딱

뒤란의 우물에 두레박이 닿는 찰싹

시골 개구리의 와글와글 합창

 

한밤중에 사촌들과 수박밭에 엎드려

요란한 개구리 울음에 오그라들던

훔친 수박을 배 터지게 나눠먹고 오줌을 싸던

그때가 좋았지

生을 위로해주는 음악이 필요 없던

음악이 위로할 생활이 닥치지 않은

 

 

*최영미 시집<도착하지 않은 삶> 문학동네

 

 

 

외출에서 돌아왔다.

비가 참 이쁘게도 오신다.

연두빛의 어린 잎새들과  철쭉꽃이랑 자주색 목단, 그리고

길가의 숨어 핀 작은 꽃들이 비에 젖어 싱그럽다.

 

이런 날은 난 차안에서도 음악을 틀지 않는다.

빗소리에 귀기울이며 빗소리가 들려주는 곳으로 무한정 따라가다

맘에 드는 나무 아래 차를 세워 한참이나 앉아있곤 한다.

앞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빗방울들을 아무생각없이 바라보는 그 즐거움,

오랜만에 듣는 소리, 내 가물었던 영혼을 깨우는 소리...

 

처음 내가 서울로 올라와 언니와 단둘이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을 때

내가 가장 그리웠던 건 빗소리였다.

시골집 마당에 내리던 빗소리를 아파트에선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방 바로 창밖에서 하루종일 추적추적 내리던 그 빗소리를.

 

목욕을 하고 나오면 아랫목에 엄마가 깔아 놓은 포근한 이불이 있고,

그 속에 몸을 쏙 집어넣으면 나른하게 퍼지는 따스한 온기에 기분이 좋아져서

빗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들었던 내 유년의 추억...

 

오늘같은 날, 너무도 그립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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