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생각한다
문태준
아침은 매일매일 생각한다
난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은 어선은 없는지를
조각달이 물러가기를 충분히 기다렸는지를
시간의 기관사 일을 잠시 내려놓고 아침은 생각한다
밤새 뒤척이며 잠 못 이룬 사람의 깊은 골짜기를
삽을 메고 농로로 나서는 사람의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함지를 머리에 이고 시장으로 가는 행상의 어머니를
그리고 아침은 모스크 같은 햇살을 펼치며 말한다
어림도 없지요, 일으켜줘요!
밤의 적막과 그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한 것은 아닐까를 묻고
밤을 위한 기도를 너무 짧게 끝낸 것은 아닐까를 반성하지만
아침은 매일매일 말한다
세상에, 놀라워라!
광부처럼 밤의 갱도로부터 걸어나오는 아침은 다시 말한다
마음을 돌려요, 개관(開館)을 축하해요!
그녀가 나를 바라보아서
문태준
그녀가 나를 바라보아서
백자(白磁)와도 같은 흰빛이 내 마음에 가득 고이네
시야는 미루나무처럼 푸르게, 멀리 열리고
내게도 애초에 리듬이 있었네
내 마음은 봄의 과수원
천둥이 요란한 하늘
달빛 내리는 설원
내 마음에 최초로 생겨난 이 공간이여
그녀가 나를 바라보아서
나는 낙엽처럼 눈을 감고 말았네
새와 한그루 탱자가 있는 집
문태준
오래된 탱자나무가 내 앞에 있네
탱자나무에는 수많은 가시가 솟아 있네
오늘은 작은 새가 탱자나무에 앉네
푸른 가시를 피해서 앉네
뾰족하게 돋친 가시 위로 하늘이 내려앉듯이
새는 내게 암송할 수 있는 노래를 들려주네
그 노래는 가시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듯하네
새는 능인(能仁)이 아닌가
새와 가시가 솟은 탱자나무는 한덩어리가 아닌가
새는 아직도 노래를 끝내지 않고 옮겨 앉네
나는 새와 한그루 탱자나무가 있는 집에 사네
- <<아침은 생각한다>> (창비, 2022) 중에서
*
참 이상하다.
문태준 시인의 시들은 낯선 시를 찾아 헤매는 나를 다시 불러 앉힌다.
멀리 가지 마, 이렇게 가까이 있잖아.
시를 읽으면서 따뜻한 뭔가가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나의 감정들을 어찌할지 몰라 난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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