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대천역의 모습
장항선 3
문동만
내 사랑 녹슬지 않기를
오줌발을 견디며 긴 길들이 자라났다
아른아른 아지랑이 속으로
오리무중의 시간이 몸을 숨기고 있다
침목은 건드리고 가는 모든 무게가 아프다
기차는 팽팽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생은 뒤로부터 읽히는 것
그러다 돌연 역방향에서
멀어진 것들이 들이치는 것
당신은 플랫폼 쪽으로 기름냄새를 풍기며
들이치고 있다
눌릴수록 맑고 빛나는 철길을 떠나 기어이 소실점으로 사라지고 있다
장항선 4
문동만
내 서툰 사랑법은 방생이 아니라 가두리였다
내가 당신한테 아무 기대없이
댓가 없는 선물을 툇마루에 놓아두고
밤기차를 타듯이
지나치는 역사(驛舍)처럼
잊을 건 잊고 기억할 건 기억하여서
불빛이 아슴아슴한 먼 집이여
지그시 눈감으면
설움도 아련한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초로의 한 여인이 팔다 남은
젓갈광주리를 버겁게 이고 내리는
그 내려보지 못한 간이역에 내리어
낯설고 담담한 내가 되어
다시 새벽 첫차로
당신에게 가면 되는 것을
포기도 사랑이리
낯선 내 모양도
다시 서툰 내 사랑법이다
*문동만 시집 / 그네. 창비
시인의 약력을 보니 나와 동향이다.
장항선 기차는 나의 젊은 시절 추억의 한 축을 이루는 풍경이다.
위의 사진은 내가 추억하고 있는 대천역의 지난 모습이다.
(지금은 해수욕장과 가까운 곳으로 역사가 이전해서 예전의 대천역은
텅빈 광장이 되어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사진의 오른쪽은 상행선, 왼쪽은 하행선이다.
우리 가족의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던 곳,
배웅하기도 마중하기도 했던, 그리고 자라선 내가 떠나와야 했던 곳....
어린 나에게 적막이란 느낌을 하나의 부호처럼 뼛속깊이 각인시켜준 장소...
지금 생각하면 저 기차역에선 누구와도 나빴던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반갑거나 애틋하거나 설레거나 그립거나 슬프거나...
언제나 결핍을 안겨주었던, 지상에 불시착한 별같은 장소였다.
그 별이 이젠 사라지고 추억 속에서만 그리운 얼굴들이 모여 산다.
조금이라도 더 가방을 들어다 주려고 개찰할 때까지 가방을 놓지 않았던 손들...
건강해라.. 갈게요...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 흔들면서... 자꾸만 뒤돌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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