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서랍

윤회 오빠...!

kiku929 2010. 2. 2. 22:37

 

 

 

나에게 오빠와 다름없는, 언제나 '윤회오빠'라 불리었던 오빠...

그 오빠가  향년 65세로 어제 아침 이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2008년 가을, 언니에게 전화해서 함께 저녁이나 먹자고 했는데

오빠가 몸이 안좋아서 아무거나 먹을 수가 없다고, 그러더니 추어탕이나 먹자하기에

함께 만나 식사를 했던 적이 있다.

그때 오빠는 참 맛있게도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오빠가 하도 맛있게 들길래 일부러 포장을 따로 해서 언니에게 보내기까지 했는데

언니 말에 그렇게 맛있게 먹은 적이 근래 처음이라며 참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오빠에게 가장 잘한 거라곤 그 추어탕 사드린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니 다시 슬퍼진다.

그날 저녁 언니에게서 오빠가 암이라는 소식과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밤에 참 많이 울었다.

 

내가 아마도 다섯살 무렵부터 함께 우리집에 살았던 오빠,

우리 엄마 아빠에게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르면서 친오빠처럼 대해줬던 오빠.

엄마 대신 내 소풍에 따라와 주었고 무거운 짐은 모두 자전거에 실어서 기차역까지 배웅와준 오빠...

그 오빠가 우리집에서 약혼식을 올리고, 엄마의 친구 딸과 결혼하고, 오빠네 고향집에서 잔치를 벌렸던 날에도

나는 함께 있었다.

그 집 앞에 버들강아지가 참 이쁘게 피었던 기억, 지금까지 본 어느 버들 강아지보다 제일로

이뻤던, 하얀 솜털 포슬포슬한 모습이 지금도 내 뇌리에 박혀있다.

그리고 철로 저 편 언덕에 방 한칸 세 얻어 시작한 신혼살림...

그 둑방을 그시절 많이 걸었다. 그 길을 걸으며 어렸던 난 가난이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내가 느낀 가난은 남루하고 신산한 것이 아니라 언덕위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풀꽃같은 느낌,

애틋하고 가녀리고 그러면서 서로가 버팀목이 되어 쓰러지지 않는 개망초같이 조금은 낭만적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것이 내가 본 오빠네 사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 오빠는 언제나 우리집의 대소사 모두 함께 했고  궂은 일은 도맡아서 해줬다.

엄마 돌아가시고 집을 정리할 때도 오빠가 인부들과 직접 일하면서 하루 온종일 시간내어

깨끗이 정리해줬다. 그 엄청난 세간살이을 정리한다는 것이 엄두도 나지 않던 일을...

그날 밤 오빠랑 함께 술한잔 했을 때 엄마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에 나보다 더 서운해 하던 오빠 모습이 생각난다.

한번도 우리가 부탁해서 싫다고 했던 적 있었을까.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들어서 알았지만 태풍이 지나가면 오빠는 아무도 몰래 엄마 아빠 산소에 다녀오고는 했단다.

그때 나뭇가지들을 치우며 오빠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젯밤 그런 오빠의 모습이 영전 사진에서 보이자 난 그 상황이 순간 너무 이상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했던 오빠가 저 자리에 있다는 것이...

우리랑 같이 밥 먹고 술 마시고 같이 산에 가고 같이 일하고는 했던 사람.

오빠는 언제나 우리쪽에 있었던 사람이지 결코 저쪽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처음 알았다.

그렇게 곁에 있는 사람들이 떠나간다는 걸...

이쪽에서 저쪽으로 한사람 한사람 옮겨간다는 걸...

오빠와의 이별은 마치 내게 인생의 새로운 전환기에 접어든 것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의외로 언니와 아들 둘은 담담하니 밝았다.

언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언니가 말했다.

자기가 생각해보니 오빠와 결혼하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오빠가 빵구를 때우면서도

한번도 돈 때문에 고생한 적은 없었다고,그래서 너무 감사하다고...

오빠가 갈 때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주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그래서 많이 웃으면서 즐겁게 오빠 병간호를 했다고...

내가 언니에게 물었다.

"오빠에게 그 말 해줬어? 오빠가 들었으면 참 좋아했을 텐데..." 

그랬더니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응, 기억이 있을 때 한번 말한 적 있었어. 하지만 마지막에 간호사가 하고 싶은 말 하라고 했을 때는

우린 다 눈빛으로 아니까 말할 것이 없다고 그냥 그렇게만 말했어."라고.

순간 세상에서 참 아름다운 인연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로 만나 헤어질 때까지 저렇듯 좋게 살아갈 수 있었다면 분명 오빠는 복받은 사람이다.

 

나중에는 통증이 하도 심해서 의식이 조금만 있으면 "진통제, 진통제..."라는 말밖에 못해서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었다고 했지만 오빠는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언니에게 너무 감사했다.

슬펐던 마음이 언니와 말하면서 많이 누그러지더니 오히려 마음이 환해졌다.

오빠와 언니는 사회적 잣대로 보면 잘난 것, 가진 것, 배운 것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자족하면서 순하게 살아온 사람, 걸어가는 길 자체가 올바른 길이었던 사람들이다.

 

지금 오빠에게 단 한마디만 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진다면 난 존경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존경한다고....

남 보기에는 많이 힘들었을 세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빠는 세상에 불평없이 스스로에게 족하면서

보란듯 살아냈으니까...

 

오빠가 아프지 않은 곳에 가서 오히려 잘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엄마가 마지막에 힘들게 숨을 몰아 쉴 때마다 그 산소마스크를 내 손으로 떼어버리고만 싶었으니까...

 

윤회 오빠!  안녕....

그곳에서 언니 기다리면서 평안히 사세요.

이 세상에서 맺어진 오빠와의 인연, 정말 감사했어요...

 

 

2010. 2.2

 

 

 

'글서랍'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티의 짐노페디를 들으며...  (0) 2010.02.03
넋두리  (0) 2010.02.03
덤...  (0) 2010.01.29
겨울 끝에서...  (0) 2010.01.29
책을 읽다가...  (0) 2010.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