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서랍

'아직도 찻잔은 따듯한데...'

kiku929 2010. 3. 4. 02:19

 

 

난 만화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어려서부터 만화방에 가거나 한 기억은 없지만

만화영화는 자주 보았었다.

그중 '캔디'라는 만화는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만화'라고 말해도 지나침이 없어

결혼하고 나서도 아이들 보여준다는 핑계로 비디오 가게에서 전 편 모두를 빌려다 보기도 하고,

그런 나를 기억하는 친구가 내 생각이 나더라며 시장에서 파는 캔디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선물해줘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그 옷을 입고 다닐 정도이다.

- 난 아주 드물기는 해도 내 마음에 드는 것에는 열광할 정도의 열정이 생기기도 한다.ㅎ~-

 

그런데 오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캔디의 어떤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테리우스가 어떤 일을 계기로 캔디를 떠나게 되고 후에 캔디가 다시 테리우스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게 되는 이야기...

어느날 캔디는 언덕위에 자리한 고아원 -아마도 캔디가 자랐던-을 찾아가게 된다.

그런데 바로 도착하기 얼마전 테리우스가 그곳에 다녀갔다는 말을 듣는다.

캔디는 슬퍼하며 창밖을 바라보다가 탁자위에 놓여진 빈 찻잔을 만져본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아직도 찻잔은 따듯한데...'라고...

그때 나도 참 슬펐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온기'라는 느낌이 마음속에 자리잡은 첫 경험이 아닌가 싶다.

 

우리 어머님이 작년 중환자실에서 열흘넘게 의식 없이 지내고 계셨을 때

날마다 면회시간 때마다 어머님의 손을 만지며 느낀 것도 바로 '온기'였다.

'아직 따뜻하구나...'하는.

나에게 살아있다는 건 온기를 잃지 않는 것이라는 그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은 없었다.

그건 반대로 우리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내가 엄마 손을 잡았을 때, 태어나 처음으로

차가움이 그토록 확연한 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에서

갈라져 나온 나만의 체험이기도 한 것이다.

나의 온 세포가 차가움에만 반응하는 것처럼 그 외의 감각이라고는 사라진 순간이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 차가움에서 난 엄마와 내가 정말 다른 세상에 갈라져 있구나,라는 것을 

진실로 인정하고 실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누군가와 악수를 나눌 때 그 사람의 체온에 대해 예민하게 느낀다.

따뜻함이 느껴질 때 더불어 그사람의 존재감도 느끼게 되니까...

어떤 알 수 없는 안도감 내지는 안심같은 거...

 

내가 듣기 좋은 말이 있다면 누군가 나에게 '따뜻하다'고 말해줄 때이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낀다면 분명 그 사람에겐 온기가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따뜻하게 살고 싶다.

마음도 몸도... 그리고 눈빛도 손길도...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존재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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