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북한강에서 일박
여림
흐르는 강물에도 세월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겨울, 북한강에 와서 나는 깨닫는다
강기슭에서 등을 말리는 오래된 폐선과
담장이 허물어져 내린 민박집들 사이로
하모니카 같은 기차가 젊은 날의 유적들처럼
비음 섞인 기적을 울리며 지나는 새벽
나는 한 떼의 눈발을 이끌고 강가로 나가
깊은 강심으로 소주 몇 잔을 떨구었다
조금씩 흔들리는 섬세한 강의 뿌리
이 세상 뿌리 없는 것들은 잠시 머물렀다
어디론가 쉼 없이 흘러가기만 한다는 것을
나는 강물 위를 떠가는 폐비닐 몇 장으로 보았다
따뜻하게 안겨오는 강의 온기 속으로
수척한 물결은 저를 깨우며 또 흐르고
손바닥을 적시고 가는 투명한 강의 수화,
너도......살고 싶은 게로구나
깃털에 쌓인 눈발을 털어내며 물결 위로 초승달
보다 더 얇게 물수제비 뜨며 달려나가는 철새들
어둠 속에서 알처럼 둥근 해를 부화시키고 있었다
이 세상 뿌리 없는 것들은 잠시 머물다가
어다론가 쉼없이 흘러가기만 한다는 걸,
시인은 강물 위 폐비닐 몇장으로 자기의 모습을 보았을 테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뿌리내리는 삶이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살면서 자기의 마음 둘 곳을 찾아 헤매지만
그 마음둘 곳은 언제나 유동적이어서 쉽게 떠나고 사라지고 변질된다.
그래서 상처없는 영혼은 없는 것...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비닐처럼
사람의 마음도 어디 둘 데 없어 거리를 방황하다가
종내에 그 마음을 거두고 이승을 떠나는 것이리라...
외롭고 쓸쓸한 영혼들이 이 지상엔 가득하다.
별들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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