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감전 / 서동욱

kiku929 2016. 7. 15. 11:59






감전



서동욱



옷장 안에 전기를 잘 가두었다

버려진 스웨터 속에서 잠을 자던

영혼의 마지막 조각 같은 정전기

생과

생을 통과하는 감전

나는 마흔을 슬프게 보낸 것 같고

너는 저녁이 와도 불을 켜지 않았으며

아마도 대흥역의 똑같은 개찰구를

언젠가 통과했겠지

세월을 인내할 줄 아는 것은

옷장이 아니며 냉장고다

저토록 엄격한 보호자를 보라

개찰구의 센서들만이 인과율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왜 한 사람이 우는 물처럼 지나갔고 왜

한 사람이 오지 않는지

그러나 금방 치워지는 식당 밥상처럼

새 밤이 오고 새날이 온다

어느 날 마른 발걸음은 기억을 잃어버리고서

역에서 내린다

탁, 탁 정전기 하나가 별을 괘도 밖으로 던질 때마다

깜짝 놀라서

낯익은 난간을 꽉 쥐어 본다

 

 

 

-시집 [곡면의 힘]중에서 / 민음사, 2016.

 





*

정전기는 예고가 없다.

옷을 입을 때, 머리를 빗을 때...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죽은듯 있다가 순간 벌떡 일어서 나 여기 아직 있다고 손을 흔들지만

이내 스러져버리는...


어떤 에너지도 되지 못하는,

그러나 한사코 뭔가에 닿으려하는 정전기,

그래서 슬픔의 부스러기처럼 따끔거리게 하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 / 곽재구  (0) 2016.08.03
나무 - 연화리 시편 1 / 곽재구  (0) 2016.07.21
몽해항로 5 / 장석주  (0) 2016.07.09
물맛 / 장석남  (0) 2016.06.30
나의 그늘 / 김영승  (0) 2016.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