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전
서동욱
옷장 안에 전기를 잘 가두었다
버려진 스웨터 속에서 잠을 자던
영혼의 마지막 조각 같은 정전기
생과
생을 통과하는 감전
나는 마흔을 슬프게 보낸 것 같고
너는 저녁이 와도 불을 켜지 않았으며
아마도 대흥역의 똑같은 개찰구를
언젠가 통과했겠지
세월을 인내할 줄 아는 것은
옷장이 아니며 냉장고다
저토록 엄격한 보호자를 보라
개찰구의 센서들만이 인과율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왜 한 사람이 우는 물처럼 지나갔고 왜
한 사람이 오지 않는지
그러나 금방 치워지는 식당 밥상처럼
새 밤이 오고 새날이 온다
어느 날 마른 발걸음은 기억을 잃어버리고서
역에서 내린다
탁, 탁 정전기 하나가 별을 괘도 밖으로 던질 때마다
깜짝 놀라서
낯익은 난간을 꽉 쥐어 본다
-시집 [곡면의 힘]중에서 / 민음사, 2016.
*
정전기는 예고가 없다.
옷을 입을 때, 머리를 빗을 때...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죽은듯 있다가 순간 벌떡 일어서 나 여기 아직 있다고 손을 흔들지만
이내 스러져버리는...
어떤 에너지도 되지 못하는,
그러나 한사코 뭔가에 닿으려하는 정전기,
그래서 슬픔의 부스러기처럼 따끔거리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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