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새바람같이는
이영광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내겐 지금 높새바람같이는
잘 걷지 못하는 몸이 하나 있고,
높새바람같이는 살아지지 않는 마음이 하나 있고
문질러도 피 흐르지 않는 생이 하나 있네
이것은 재가 되어가는 파국의 용사들
여전히 전장에 버려진 짐승 같은 진심들
당신은 끝내 치유되지 않고
내 안에서 꼿꼿이 죽어가지만,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시와표현》(2018년 3월호)중에서 / 시집 『아픈 천국』에 수록된 시라고 소개됨
*
시는 '창조적 오독'이 많을수록 좋은 시라고 한다.
이 말에는 오독이 가능하되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난삽한 것과 난해한 것은 다르다.
난삽하게 쓰여진 시를 '창조적 오독'을 가능케 하는 시라고 할 수 없다.
가끔 난삽한 시를 난해시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이 시의 매력이라면 아마 이 한 구절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독자에게 생각을 주는 여지가 많은 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한 구절이 있어
이 시는 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꾸만 따라하게 되는, 자꾸만 뒤돌아보게 하는 아름다운 구절이다.
누구에게나 자기가 '자꾸 좋아지던 시절'은 영원히 아름답게 빛나고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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