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꽃
김중일
꽃이 핀다
꽃이 피는 건
꽃이 떠나고 있는 것
꽃이 피는 가지 속 좁디좁은 방에서
한 식구가 촛불 같은 작은 상 하나에 모여
서로 꽃잎을 수저처럼 부딪치고 섞으며
일생을 살다가 죽을 때가 되어 한송이 주름진
꽃이 되어 떠나는 것 가지 밖으로
꽃이 피는 건
꽃이 제 식구를 떠나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
꽃이 꽃 속보다도 핏빛인 이 세상 공중에
저무는 바람에 제 몸을 눕히는 것
밥상에 숟가락이 놓이듯
가지런히 한송이 꽃이 핀다
사람은 꽃잎으로 밥을 떠먹을 수 없다
밥이 너무 무겁다
공중은 붉게 녹슨 숟가락 같은 꽃을 든다
바람이 분다 배가 부르다
꽃잎이 흔들린다 숟가락질이 빨라진다
- 시집『가슴에서 사슴까지』( 창비,2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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