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떠나는 꽃 / 김중일

kiku929 2018. 9. 17. 16:20




떠나는 꽃



김중일



꽃이 핀다

꽃이 피는 건

꽃이 떠나고 있는 것

꽃이 피는 가지 속 좁디좁은 방에서

한 식구가 촛불 같은 작은 상 하나에 모여

서로 꽃잎을 수저처럼 부딪치고 섞으며

일생을 살다가 죽을 때가 되어 한송이 주름진

꽃이 되어 떠나는 것 가지 밖으로

꽃이 피는 건

꽃이 제 식구를 떠나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

꽃이 꽃 속보다도 핏빛인 이 세상 공중에

저무는 바람에 제 몸을 눕히는 것

밥상에 숟가락이 놓이듯

가지런히 한송이 꽃이 핀다

사람은 꽃잎으로 밥을 떠먹을 수 없다

밥이 너무 무겁다

공중은 붉게 녹슨 숟가락 같은 꽃을 든다

바람이 분다 배가 부르다

꽃잎이 흔들린다 숟가락질이 빨라진다



- 시집『가슴에서 사슴까지』( 창비,20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