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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낮잠 / 김중일

kiku929 2018. 10. 18. 16:48



봄밤의 낮잠




김중일




내 낮잠 속에 손을 넣어 헤집으면 솜사탕 같기도 하고, 피 스민 붕대 같기도 한 가늘고 긴 연기가 얽혀 나오겠지.

손이 부채처럼 부풀어오르겠지. 그것은 밥 짓는 연기일까, 화장장 연기일까.


낮잠이 마중 나온다, 봄밤으로.

나는 마중 나온 낮잠의 가는 손을 설핏 잡는다.

그대로 속절없이 검은 물속 같은 봄밤으로 끌려든다.


봄은, 여름 가을 겨울로부터 미리 끌어온 낮잠이다.

봄날 어느 하루 동안, 다 흘러온 사계절이 모두 봄밤에 모였다.

이제부터 사철 봄밤이라면, 봄밤은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계절.


봄은 이제 물음.

사철 나는 봄밤을 미리 끌어다 홑이불처럼 덮고, 황망한 대답 대신 낮잠을 잔다.

낮잠은 봄밤에 대한 대답이다.


어서 자야지, 뽑힌 나무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어서 자야지, 뽑힌 나무를 보면 허공에 누이고 싶다.


봄밤의 나무에 기대는 걸 좋아해, 기대어 자는 낮잠을 좋아해.

봄이어도 괜찮다는 잠꼬대처럼 피는 잎들 꽃들.